• 2024. 2. 13.

    by. 별별다방

    5.  파리, 그리고 인상주의를 만나다.

    그의 나이 33. 고흐는 파리에서 동생 테오와 함께 살며 그림공부를 시작합니다. 고흐가 생활하던 시기의 파리는 많은 변화가 생기는 시기였습니다. 에펠탑이 세워지고 있었고, 신작로가 들어서며 산업이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화려하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파리 속에 반고흐가 있었던 것이죠.

    1887~1889. 에펠탑 공사 과정
    1887~1889. 에펠탑이 세워지고 있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 함께 몽마르트 언덕에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곳에서 그의 또다른 조력자였던 탕기영감을 만납니다. 늘 생활비가 부족했던 그에게 물감이나 화구들을 외상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고흐, 탕기영감 1887. 배경에 우키요에 작품들이 들어가 있다.

     

    고흐는 안트베르펜에서 만났던 우키요에를 파리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파리와 일본의 교역이 활발해지며, 우키요에는 파리의 문화에도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이죠.

    고흐는 강렬한 색과 명료한 윤곽선으로 그려진 우키요에를 따라 그릴만큼 매우 좋아했고, 우키요에가 만들어진 일본에 가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색이 쨍한 그림을 그리는 일본은 햇빛이 매우 강렬한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일본 우키요에 매화도 작품과, 고흐가 따라그린 매화도 모작
    좌: 가메이도 매화도  /  우: 고흐가 따라그린 매화도 모작

     

    고흐의 변화는 우키요에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전성기를 이루기 시작한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교류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고갱, 모네, 로트랙, 피사로, 드가 등과 만나며, 고흐는 그들의 그림에서 충격을 받습니다. 그들의 그림에선 빛과 공기가 만져졌기 때문입니다. 정제되고 고착된 그림이 아닌, 변화하는 빛과 색, 현장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인상파의 그림은 고흐에게 또 다른 그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렇게 고흐는 인상파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림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죠.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1876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1876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의 개구리 연못. 1869

     

    어둡고 무거웠던 그의 그림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고, 오랜 반복과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고흐는 그만의 색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6. 불꽃처럼 그림의 절정기를 맞이하다.

    1888. 그의 나이 35. 대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고흐는 남부 프랑스 아를로 이사를 합니다.

    그림의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햇빛이 쨍할 것 같은 남부 프랑스로 이동을 한 것이죠.

    고흐는 이곳 아를에서 그림의 절정기를 맞이했고, 그의 작품 대부분도 아를에서 완성됩니다.

     

    남부 프랑스 아를,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8년째입니다.

    고흐는 그가 생애 가장 사랑했던 노란집에 정착하게 됩니다. 고흐는 살면서 37번의 이사를 했는데요. 그 많은 이사를 하면서도 자신의 공간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 노란집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공간이 있던 집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고흐는 이 노란집을 정말 사랑했고, 자신의 방을 자주 그렸습니다.

     

    고흐는 이곳에서 어느 때보다 안정된 시기를 보내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고흐의 유명한 그림들이 탄생한 시기가 대부분 이 시기입니다.

    이 시기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이 당시 화법이 지속되었죠. 우리가 고흐 작품에서 느끼는 화풍과 화법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흐는 색과 사물의 형체에 자신의 생각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보이는 색채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담은 색과 모습으로 작품은 그려지게 됩니다.

    그의 작품 중 <밤의 카페 풍경>은 붉은색의 벽지, 초록색 당구대, 노란색의 바닥으로 채색되었습니다. 그림에서는 대체로 보색으로 그리지 않는데 고흐는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죠.

    고흐의 밤의 카페 풍경. 1888. 09
    고흐의 밤의 카페 풍경. 1888. 09

     

    실제로 그 카페의 풍경은 붉은 벽지가 아니었지만, 고흐는 "색채는 분위기를 표현해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느끼는 밤의 카페 풍경을 색채로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고흐가 자기 방을 그리며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에는

    "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의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세면대는 오렌지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문은 라일라색... " (1888. 10. 16) 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고흐의 방, 1889

    그러나 고흐의 방은 실제로 벽지는 보라색이 아닌 흰색이었고, 침대도 흰색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흐는 세상을 자신만의 색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그대로 화풍에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현대 미술에 끼친 엄청난 영향력이었던 것이죠.

     

    반고흐 이전 시대의 작가들은 그림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반고흐 이후 현대 미술은 작가가 느끼는 그대로 그림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도를 고흐가 최초로 미술사에 새기게 된 것이니까요.

     

    "나는 점점 인상주의자들의 기법이 아닌 단순한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무엇을 의미하려 하는지 알아볼 수 있게 그리고 싶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것을 똑같이 재현하기보다.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주관적으로 사용한다."

     

    보이는 대로가 아닌, 느끼는 그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표현하는 현대 미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